KBS 1TV ‘역사저널;그날’ 광해군, 세자 되던 날!
KBS 1TV ‘역사저널;그날’ 광해군, 세자 되던 날!
  • 박철성 dhns@naver.com
  • 승인 2014.08.30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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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성 대기자] 조선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려 했던 개혁가. 혹은, 지나친 권력욕으로 형제를 죽인 패륜아. 둘러싼 극과 극의 평가를 받고 있는 광해군을 조명한 ‘역사저널;그날’ 광해군, 세자 되던 날이 신병주 교수와 류근 시인의 패널로 8월 30일 토요일 밤 9시 40분에 방영된다.

18세에 세자에 책봉돼 왕위에 오르기까지 16년 동안 과연 무엇이 광해군의 두 얼굴을 만든 것일까? 베일에 싸여있던 광해군의 세자 시절을 통해 조선 최초의 후궁 소생 세자 광해군의 참모습을 파헤쳐본다.

후사를 보지 못한 선조는 선뜻 세자를 정하지 못했고, 그러던 중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일본군이 도성까지 압박해오자 선조는 몽진을 결심한다. 하지만 세자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는 상태이다. 몽진 하루 전날, 마침내 선조는 공빈 김 씨의 둘째 아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왕비 소생의 적자도 아니고 맏아들도 아니었던 광해군. 그가 세자에 책봉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으로 갑작스럽게 세자가 된 광해군. 그는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분조를 이끌고 전쟁터를 돌며 민심을 수습한다. 광해군의 분조는 전쟁으로 절망과 혼란에 빠져있던 백성들의 구심점이 된다. 명(明) 황제는 칙서까지 보내 선조의 실패를 만회하라며 광해군을 격려한다. 하지만 광해군이 주목 받을수록, 선조는 아들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한다. 광해군을 아들이 아닌 왕권을 위협하는 정적으로 인식한 것이다.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한 부자(父子)관계는 회복되지 못한 채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이렇게 아버지 선조의 마음을 잃은 광해군. 그의 앞에는 또 다른 벽이 놓여 있었다. 분조 활동을 격려했던 명(明)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세자 책봉 주청을 거절한 것이다. 광해군은 적자도 아니고, 장남도 아니기 때문에 세자 자격이 없다는 이유였다. 세자 책봉을 둘러싼 조선과 명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던 중, 설상가상으로 의인왕후가 승하한다. 선조는 새 왕비를 맞아들였고, 새 왕비 인목왕후는 영창대군을 낳는다. 우려하던 적자의 탄생으로, 광해군의 입지는 한층 위태로워진다.

아버지의 견제와 명의 세자 책봉 거부, 예상치 못한 적자의 탄생으로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세자 시절을 보낸 광해군. 8월 30일 토요일 밤 9시 40분 KBS 1TV로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세자 광해군이 수많은 난관을 딛고 극적으로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사연을 최원정 아나운서의 MC로 집중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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