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정 관장 칼럼] 갤러리에 가면…
[장미정 관장 칼럼] 갤러리에 가면…
  • 시사매거진 2580 dhns@naver.com
  • 승인 2013.04.13 0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나비니 갤러리 대표

갤러리에선 작가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새로운 전시를 찾아다니는 마니아가 있는가 하면 의외로 생애 첫 갤러리 방문인 사람도 드물지 않다. 잔뜩 주눅이 들어 숨도 크게 못 쉬고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슬리퍼 질질 끌고 껌 짝짝 씹으며 들어오는 사람, 신형 유모차를 밀며 갤러리 구석구석을 마트 장 보듯 누비고 다니는 젊은 아기엄마, 징징거리는 갓난아기를 안고 그림을 보여주며 조기교육하려 애쓰는 여자, 애완견을 데리고 들어와 강아지의 안목까지 높여주려는 사람, 연인과 함께 팔짱을 끼고 들어와 키득거리며 무얼 먹으러 갈지 내내 이야기하는 커플 등. 다 좋다. 모두 작품을 감상할 권리가 있다.

사진은 장미정 관장 모습ⓒKoreaNews

갤러리는 미성년자 관람불가도 없고, 3세 미만 입장불가도 없으며, 강남의 물 좋은 무도회장처럼 입구에서 외모나 나이를 가늠하여 들여보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종종 걸러지지 않고 들어오는 불청객이 한두 번씩 찾아온다. 여자 두 명과 남자 한 명이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갤러리에 들어왔다. 작품 감상 잘하고 그들이 내게로 걸어오더니 일행 중인 여자 한 명이 전시에 대해 이것저것 말을 걸면서 너스레를 떨더니 자신의 손을 내밀어 내 손 하나를 잡아 손에 무언가를 쥐여 주며 “선물이에요”라며 싱글싱글 웃기까지 하는 게 아닌가. 순식간의 일이라 약간 당황했고 껌이나 사탕 정도를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도 미소 지으며 펴보니 씹고 난 껌을 싼 꼬깃꼬깃한 종이를 내게 준 것이었다.

애써 친절하게 웃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갤러리는 휴지통이 아니에요”라고 말했으나 속에서 화가 올라왔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그 여자의 손에 쥐여 주며 나도 “선물이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갤러리가 성지는 아니니 엄숙해야 할 필요는 없다. 조금 큰 소리로 떠든다고 크게 민망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가끔 정말 아주 가끔 나를 이렇게 깜짝 놀라게 하는 관람객이 있다. 나에게 그러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작품에 손을 대고 만지고, 툭툭 치고, 건드려보고, 잡아당겨 보고 두들겨대고, 보는 내내 아슬아슬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옆에서 지켜보다 결국 참지를 못하고 “손님 눈으로만 봐 주세요”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가관이다. “깨지면 내가 사면 되잖아요. 살 테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이쯤에서는 참아주면 안 된다. 작가의 작품을 마트의 주방용품 정도인 줄 착각하는 사람에게는 관람객으로서의 대우를 해 줄 필요가 없다. 아니 이 갤러리에서 구경할 자격을 줘야 할 이유가 없다. “여보세요. 그건 아니죠. 작가가 안 파는 작품이면 어떡하실 건데요. 팔고, 안 팔고 중요한 게 아니라 예술가가 애써 만든 작품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시는 것 자체가 지금 잘못된 생각이시잖아요” 그나마 언성 높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낮게 말했다.

작품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아마도 무료 관람이라 별 중요성을 못 느끼나 보다. 누군가에게는 몇 달을 몇 년을 그 작품 하나 완성하기 위해 힘들고, 배고프고, 때론 우울하고 포기하고, 자고 싶고, 놀러 가고 싶은 숱한 유혹을 물리치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작품을 완성하고 전시준비를 하고 세상 사람들과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싶어서 나름대로 큰 투자까지 해서 전시하는 건데 남의 집 개 밥그릇 건드리듯 툭툭 쳐대면 어느 작가인들 좋겠는가.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려면 최소한의 예의는 필요하다. 전시장 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하거나 불편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남의 집에 초대되었다고 생각하면 좋을 듯싶다. 걸을 때 너무 소리가 나는 슬리퍼나 샌들은 되도록 삼가고, 다른 관람자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동행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울거나 칭얼대는 어린아이는 동행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공예품 전시일 경우에 유모차는 자칫 작품이 있는 좌대나 장식품들을 건드려 작품을 파손하거나 좌대가 넘어질 우려가 있으므로 되도록 유모차는 갤러리 밖에 세워두고 아이를 안고 들어가거나, 아이가 상태가 안 좋아 칭얼거리면 아예 데리고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만약 갤러리 내부에 관람객이 없거나 꼭 봐야 할 전시일 경우 전시장에 있는 큐레이터나 관계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관람하는 것이 좋다. 또 휴대전화가 걸려 왔을 땐 잠시 밖으로 나가 통화를 하는 것이 예의이며 갤러리를 들어가기 전 진동으로 하는 게 예의이다. 그리고 전시를 보다가 작품이나 작가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갤러리에 있는 갤러리 관계자에게 질문을 하면 누구든지 친절하게 이야기해 줄 것이다.

아마도 미술관을 자주 찾지 않는 사람들은 미술관이 공원이나 백화점처럼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주 미술관을 다녀본다면 생각처럼 그렇게 낯설고 어려운 곳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사람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좋은 전시를 즐기고 좋은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남의 집에 초대된 손님처럼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아는 척, 있는 척, 행동이 아닌 차분한 몸가짐, 그리고 대형 갤러리가 아닌 작은 전시 갤러리에서는 그곳의 스텝이나 작가, 지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 전시를 다보고 나오면서 “잘 봤습니다”라는 인사 한 마디 건네고 나온다면 당신은 최고의 관람객인 것이다.

정리/최유리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강서구 양천로 400-12, 1225호 (가양동, 골드퍼스트)
  • 대표전화 : 02-2272-91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남규
  • 법인명 : 시사매거진2580
  • 제호 : 시사매거진2580
  • 등록번호/등록일 : 서울 다 06981 / 2004-06-02
  • 등록번호/등록일 : 서울 아 03648 / 2015-03-25
  • 발행일 : 2004-06-02
  • 총재 : 이현구
  • 회장 : 김태식
  • 발행인 : 김남규
  • 편집인 : 송재호
  • 시사매거진2580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시사매거진2580.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smgz2580@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