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교육청의 ‘일반고 점프업’ 발표에 대한 논평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일반고 점프업’ 발표에 대한 논평
  • 시사매거진 2580 dhns@naver.com
  • 승인 2013.08.22 19: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귀의 짐을 덜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짐에 물을 붓는 격

김형태 교육의원은 22일 일선 학교 현장 선생님들의 의견을 모아, 다음과 같이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일반고 점프업’ 발표에 대한 논평을 했다.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교육이 없는 교과부 시절”을 혹독하게 경험했다. 단팥 없는 찐빵처럼, 이명박 정부의 5년은 교육적인 논리와 교육적인 안목 대신, 정치논리, 경제논리, 진영논리, 경쟁논리만 무성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이라면, 학교다양화라는 이름으로 교육을 황폐화시킨 것이다. 다양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학교를 서열화하고 분리하는 수직적인 다양화는 분명 교육적이지 않다. 공부 잘하는 아이 따로 떼어 과학고, 외고, 자사고, 국제고 등 특목고 만들고, 장애아이 따로 떼서 특수학교 만드는 것은 교육논리가 아니다.

교육적인 관점에서 보면, 분리교육이 아닌 통합교육을 해야 한다. 한 교실 안에 경제적으로 잘사는 아이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도 있고, 성적 우수자도 있고 다소 성적이 부진한 아이도 있고, 장애아이도 있고 비장애아이도 있는 통합교육이 교육적으로 올바른 교육이다. 어학, 과학, 문예체 영재를 위해 특별한 학교를 따로 두기보다 일반학교 안에서 교과 활동, 또는 비교과 활동을 통해 어학, 과학 영재를 키워주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특수목적학교를 자꾸 만들기보다는 공교육 안에서 어학, 과학, 문예체 등 소질과 재능을 키워줄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보편적인 공교육 안에서 맑고 밝고 씩씩하게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회에서 국제중, 자사고 폐지 법안을 낸 것은 수직적 다양화를 수평적 다양화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라고 본다. 다른 이유 없이 오직 하나 부모 잘 만난 덕에, 사립초-국제중-특목고-명문대 나와 우리 사회지도층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 학창시절 내내 반쪽 세상만 경험한 외눈박이 같은 아이들, 걱정되고 문제 있어 보이지 않는가?

국제중, 특목고 등 서열화 된 한국교육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금 우리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를 거쳤다고 자랑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인데, 불행하게도 과거시험과 사농공상을 따지던 전근대적인 의식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출세)하기 위해서는 학력, 더 엄격히 말하면 좋은 학벌과 인맥이 필요하다. 그렇다보니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한 고속도로, 지름길이 생겼다. ‘고액 사립 어학원(어린이집, 유치원)→사립초→특목고→명문대’로 이어지는 이른바 ‘출세 특급열차’가 그것이다. 경제적 여유만 있으면 자기 자녀를 이 열차에 태우기 위해 모두들 안간힘을 쓴다. 아니 난리법석을 떨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 특급열차의 우등석에 올라타기만 하면 성공(출세)이 보장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특급열차의 우등석은 한정돼 있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힘 있는 부유층, 상류층의 차지가 되기 십상이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특권을 이용한 반칙’을 활용해 당당히 자녀들을 올려 태운다. 정문이 안 되면 옆문, 옆문이 안 되면 후문으로라도 기필코 집어넣고 만다. 자식의 출세를 장담하는 보증수표 앞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도덕성, 체면은 모두 휴지 조각이 되고 만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것, 꿩 잡는 게 매라는 것을 뼛속 깊이 잘 알기에. 이런 문제 때문에 교육주체들 모두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선생님도 모두 힘들고 고통스럽다. 왜 우리는 모두 힘들어하는 교육체제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언제까지 소금쟁이처럼 전근대를 맴돌 것인가?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서울시교육청이 이번에 내놓은 일반고 살리기 정책은 일면 이해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꾸로, 또는 결과적으로 한국교육을 더 망치는 섣부른 정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혹 떼려다 혹을 더 붙이는 격이다. 직업 교육 확대하고, 문예체 교육을 활성화하고 대안학교를 늘리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고 싶어도, 그러나 원인 진단부터 잘못되었고,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듯이 “경쟁과 분리”라는 전체적인 흐름 때문에 일부 긍정적인 시도조차 빛을 바라고 있다. 일반고가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직시해야 함에도, 이를 도외시한 채 땜질식, 임시처방에 급급했다고 평할 수밖에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일반고 살리기 위해, 문예체·직업 교육 확대, 우수 학생을 위한 영어·수학 심화과정 개설, 학습부진 및 학교생활 부적응 위기학생에 대한 지원 체제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이를 위해 교육과정 거점학교, 직업교육 거점학교, 고교 교육력 제고 거점학교, 기초 튼튼 행복학교, 위탁형 대안학교 등을 신규 지정 또는 확대 운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고가 슬럼화한 현상의 원인은 일반고에 경쟁 기회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학생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서열화 되고, 그 서열에 따라 분리되는 교육을 받아 왔다. 따라서 학생들 스스로를 실패자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실패감, 열패감이 상대적으로 큰 학생들의 집단이기 때문에 성적에서든 생활면에서든 위기를 겪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일반고 학생들의 상처를 싸매준다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결과적으로 소금을 뿌려 더 깊은 상처와 아픔을 주려 한다. 일반고를 다시 한 번 더 경쟁과 서열화로 분리하는 것을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일반고 자체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그 중 우수한 학생들은 영어·수학 심화과정 거점학교를 만들어 분리하고, 문화 예술에 능력 있는 학생은 교육과정 거점학교를 만들어 분리하고, 직업교육 거점학교를 만들어 분리하겠다고 한다. 그럼 이제 남은 일반고는 어떤 학교라 불러야 하는가? 그리고 남은 학생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슬럼화를 넘어 슬러지라고 불리어지지 않겠는가! 왜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가?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의 이번 발표는 누가 봐도 충분한 준비 기간 없이, 아니면 말고식의 즉흥적인 계획이다. 농익은, 숙성된 정책이 아니고 어설프고 설익은 정책 남발이다. 아주 경박한 아마추어리즘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교육부 장관과 교육학자 출신의 교육감이 어떻게 이렇게 비교육적이고 무책임한 정책을 발표할 수 있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실험용 쥐가 아니다. 어떤 정책을 시행하려면 타당성, 적합성 조사 등 충분한 준비 작업을 하여야 함에도 이번에는 전혀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무엇에 쫓긴 동물처럼 성급하게 내놓는 정책이 과연 진정성이 있고 실효성, 현실성이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선행행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기회 있을 때마다 선행교육과 선행학습의 폐해와 부작용을 들며, 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해왔다. 그런데 정작 서울시교육청이 선행행정을 하고 있다. 이번 정책을 발표하면서 서울교육의 양대 축인 의회와는 한 마디 상의나 협의가 없었다. 특히 이번 정책은 예산이 수반되는 정책이다.(학교당 1억~6억7000만원 지원) 당연히 의회와 긴밀한 협력과 사전 논의가 있었어야 했다. 막말로 예산 심의와 삭감 권한을 가지 의회가 이번 예산을 모두 삭감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산이 동반되는 정책을 어떻게 의회와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문용린 교육감의 독주행정, 일방행정, 불통행정, 밀실행정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심해도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다.

 핵심 내용 중에 서울 시내 11개 지역교육지원청별로 한 곳씩 거점학교를 지정해 영어·수학 심화학습 과정을 운영하여, 우수 학생들이 토요일 오전이나 방학기간 이 학교로 등교해 특별 수업을 받도록 하겠다.

이는 특목고·자사고도 모자라 서울시내 일반고 재학생 가운데 공부 잘하는 학생들로 구성된 우등학교, 우등반을 만들어 학생들을 서열화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이게 어떻게 일반고 살리기 대책이란 말인가?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워주는 행복교육, 다시 말해 경쟁교육을 완화시키겠다면서 결과적으로 더욱 경쟁교육을 심화시키는 모순이요 넌센스요 자기부정이다. 문용린 교육감의 이러한 구상은 공교육 파행, 학교ㆍ학생간 위화감 조성, 졸속 시행으로 인한 부작용 등 우려되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기계인가? 그러잖아도 세계 최고의 학습노동에 시달리고 있어 해외토픽감이지 않은가? 학업중단자(학교수업중단자)가 속출하고 심지어 자살하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이다. 이 고통스럽고 무거운 학생들의 짐을  덜어주기는커녕 나귀의 짐에 물을 부어 붓는 격이다.

또한 주5일제수업의 취지를 무력화하겠다는 시도이며, 이러려면 주5일제수업과 방학은 왜 필요한가? 교육청이 발 벗고 나서서 아예 학생들을 방과후시간도, 토요일도, 방학기간도 사실상 또 다른 사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인가? 학교마다 연간 8000만원씩 지원해서 우수 학생 입시 과외를 시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심화과정 거점학교 계획은 정말 가장 끔찍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다. 교육과정에도 없는 어려운 내용으로 학원에서나 할 만한 내용을 공교육기관이 특별 과외처럼 하겠다는 것 아닌가?

각 학교의 학사파행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거점학교로 가는 교통비와 교통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안전문제와 생활지도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결석 문제는? 성적 처리는? 무거운 책가방은? 대기할 공간은? 학생들은 자기 학교도 없이 왔다 갔다 할 것이 뻔하고, 학생들이 이 학교 저 학교를 옮겨 다니며 수업을 듣게 됨에 따라 생기는 혼선과 혼란, 부작용이 우려된다. 성인인 대학생에게도 적용하지 않는 제도를 고등학생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생각된다. 제발 학교 현장을 보며 정책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거점 학교 교사들의 노동 강도가 강해질 것이 뻔하다. 보나마나 대규모 강사나 기간제 교사로 채워질 가능성이 짙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거점학교 등이 영재학교처럼 비교적 의욕적이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모임처럼 운영될 것이라고 너무 쉽게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점이다. 영재학교조차 여러 학교에서 모이는 학생들의 차이로 인한 문제와 각 학교의 학사 일정이 달라서 생기는 복잡한 문제들에 직면한다. 각 학교의 특기 적성 및 방과후수업조차 운영이 쉽지는 않은데, 다양한 학교의 이질적 학생들이 모인 거점학교가 원만하게 운영될까? 혹시 유배지처럼 낙인찍히거나 영재학급으로 변형되는 것은 아닐까?

거점학교를 통해 예술, 체육, 직업교육을 확대하겠다.거점학교를 통해 예술, 체육, 직업교육을 확대한다는 계획이 임시 처방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각 학교의 자율적 교육과정 속에 포괄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식과 기술 습득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우 관계 형성 등 인성 발달과 삶의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며칠을 걸러 띄엄띄엄 만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안정적인 교우 관계 형성이 어렵다. 생활지도가 어려운 것도 불을 보듯 뻔하다. 공감이나 이해보다 관리와 통제, 처벌이 주요한 생활지도 수단이 될 것이다.

거점학교 재학생 선발은 일반고 교장이 2, 3학년 학생 중 2~3명씩 추천토록 한다는 게 서울시교육청의 계획이다. 또한 거점학교에서 이수한 과정은 학생부에 기재해 대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정책이 참 쉽게 술술 나온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거점학교 학생 선발 과정이 보나마나 치열해져 공정성 시비가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거점학교에 대한 특혜 논란과 함께 선정 여부를 둘러싼 일반고간 서열화와 학생 간 위화감 조성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일반고를 육성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이 오히려 다수의 일반고를 죽이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과도한 스펙 경쟁으로 인한 교육과정 파행과 사교육비 증가를 막기 위해 대입 전형에서 학교 밖의 실적은 기록을 금지하는 추세인데, 이를 망각하고 심화과정 거점학교는 학원교육을 학교로 끌어들여서 스펙 쌓기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심화과정 거점학교는 정말 말이 안되는 발상이다. 전형적인 탁상행정이고 졸속행정이다. 그럼에도 서울시교육청 관계자가 이 과정을 이수하면 학생부에 기재돼 대입에도 도움이 된다고 대놓고 말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을 뿐이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이 내놓은 교육과정 거점학교 제도는 실현 가능한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1+4형(1일은 일반고, 나머지 4일은 거점학교에서 공부)에서부터 4+1형까지에다 오후형과 주말(심화반)까지 있다. 수요 조사로 보건대 학교별로 각 영역 당 10여명의 학생들을 별도의 반으로 편성하고, 그 학생들의 교육과정과 거점학교의 교육과정을 맞추어야 한다. 복잡한 제도는 실현되기 어렵다. 공사실명제 하듯이 교육정책에도 정책 실명제 해야 한다. 이 제도가 실패했을 때 그 책임자는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 탁상행정은 더 이상 안된다.

우등생 거점학교 방안은 현재 교육당국이 추진 중인 정책 방향과도 동떨어져 있다.엇박자도 이런 엇박자가 있는가? 교육당국끼리 협의도 하지 않는가? 교육부는 자공고를 폐지하고, 학교의 자율적 교육과정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런데 서울시 교육청이 거점학교를 추진하고자 한다면, 그 동안 존재했던 중점학교는 폐지해야 한다. 3개의 예술중점학교, 1개의 체육중점학교는 거점학교로 해소하고, 19개의 과학중점학교는 일반고로 전환해서 학교의 자율적 교육과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부는 앞서 무너진 공교육을 살리겠다며 자사고 신입생을 성적에 관계없이 추첨으로만 뽑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 스스로도 영훈ㆍ대원 등 서울지역 국제중학교도 2015학년도부터 신입생을 추첨으로만 뽑도록 제도를 바꾸지 않았는가? 성적 위주의 선발방식과 대입준비반 형태의 학교 운영방식에 제동을 걸자는 취지였다. 그런 교육 당국이 또 다른 형태의 성적 우수학교를 만들고 대입 준비를 시킨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양 기관 모두 꿈과 끼를 키워주는 행복교육을 말하면서,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추구하는 정책방향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최근 표면화된 일반고 슬럼화 문제는 일반고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목고·자사고가 우수 학생을 우선 선발하고 설립 취지에 맞지 않게 입시 위주 등 파행적으로 운영한 결과다. 그래서 교육부가 자사고의 학생선발권을 폐지하고 특목고 등의 지도·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서울시 교육청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비리와 파행으로 얼룩진 영훈중 등 국제중 문제 하나 속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면서, 진정으로 일반학교를 살리고 있는, 신바람을 불어넣고, 공교육의 대안을 넘어 표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혁신학교에 대해서는 진영논리에 갇혀 탄압수준으로 과도한 평가와 감사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교육 현장에 혼란만 가중시킬 우려가 있는 이런 어설픈 정책을 밀어붙여서는 안된다. 이번 대책이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 및 협의를 거쳐 마련된 것이라고 하는데,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의회도 언론도 몰랐던 일을, 정말 도대체 어떤 교사·학부모·전문가의 말을 듣고 수렴했는지 자못 궁금하다.

그밖에도 거점학교가 학교 내 불량일자리 증가의 숙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거점학교로 지정된 학교들은 업무량이 대폭 증가할 게 뻔하다. 충분한 재정지원과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채, 거점학교에 필요한 새로운 업무를 강사나 기간제 교사 등 비정규직들이 담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시간제 불량 일자리를 가진 교사들은 좋은 교육을 하기 어렵다. 거점학교에 새로 필요한 교사와 직원은 반드시 정규직으로 충원해야 한다.

아울러 예산이 적절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거점학교에 대한 투자는 이중 지원의 논란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아님에도 일반고에서 선발된 특정 학생들을 위해 과학, 외국어 거점학교 1억~4억 원, 직업교육 거점학교 5억6천~6억7천만 원, 심화교육 거점학교 8천만 원 등을 지원한다고 한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일반고 전체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부 학생 분리를 통해 새로운 서열 체제를 만드는데 투자하는 예산이 되어서는 안 된다. 거점학교와 거기에 다니는 학생에게 예산 등 정책적 혜택과 교사의 에너지가 집중되는 것은 그렇지 못한 학교와 학생에게 상대적 박탈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예체·직업 교육이 중요하다면 모든 학교에서 내실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는 게 바람직하다.

일반고 슬럼화의 핵심은 서열화고, 소수의 학생만 만족스런 직업과 자존감 있는 인성을 형성하고 나머지는 실패자가 된다는 데 있다. 특목고도 특수 목적보다 대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특성화고조차 취업보다 대학 진학에 목을 매는 상황이 계속 된다면, 거점학교 제도는 일반고 JUMP UP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 눈속임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희망 고문하는 것일 뿐이다. 거점학교 학생들의 진로 대책 보장 방안을 함께 제시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진로 교육이라기보다 특목고와 특성화고 흉내 내기 취미 활동을 위해 서울 교육이 요란을 떤 것 밖에 안 된다. 특목고들이 설립취지에 맞게 운영되도록 지도 감독하고, 특성화고 학생들의 확실한 취업과 차별 없는 대우를 보장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교육과정을 일반고와 특성화고로 단순화시키고 학교 내 자율적 교육과정 편성을 권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 서울시교육청 발표안은 일반고 점프 업이 아니라 일반고를 완전 기피학교로 만들고, 그 중 몇 몇만 과학고 따라하기, 외국어고 따라하기, 예술고 따라하기, 특성화고 따라하기를 통해 살아남으라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분리가 아니라 통합에서 답을 찾기 바란다. 나무 한두 개로는 숲이 될 수 없다. 고교선택제와 자사고를 과감하게 폐지하고, 특목고를 축소시키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일 것이다. 고등학교는 크게 일반고와 특성화고로 단순화하고, 학교 내에서 교육과정을 다양화하게 운영해야 한다.

끝으로 서울시교육청은 제발 어설픈 영어를 남발하지 않기 바란다. ‘일반고 점프 업’이 무엇인가? ‘일반고 살리기, 또는 일반고 정상화’라고 하면 될 일을... 서울시가 행정용어 등을 쉽고 고운 우리말로 하려고 하는 것에 반해, 더 잘해야 할 교육청이 거꾸로 가고 있다. 제발 학생들이 보고 있다. 제발 학생들은 중심에 놓고 용어에서부터 정책 하나하나까지 선정하고 계획해야 하는 것 아닌가?

흔히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하는데 교육감 한 사람 바뀌면 이처럼 정책이 손바닥 뒤집기 하듯 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적절한 대안으로, 우리나라도 핀란드처럼 하루 빨리 국가교육위원회를 두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분명 국가기관이지만 인권에 관해서는 대통령의 지시를 직접 받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독립성과 전문성을 가지고 활동하듯이, 교육도 정치권의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자는 것이다. 오직 교육적인 안목과 교육적인 논리로 교육문제를 풀게 하자는 것이다. 핀란드의 경우 에르끼 아호가 약 20년 간 국가교육청장을 하는 동안 여야가 몇 번 바뀌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있게 교육적인 관점으로 임하게 하여 교육혁신에 성공했다고 본다.

우리도 이제는 미국식 사고에서 벗어나 유럽식 사고를 할 때라고 본다. 독일 등 유럽국가들은 적어도 돈으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려 한다. 대학교수나 청소하는 아주머니나 월급은 큰 차이가 없다. 사회적 영향력의 차이가 있을 뿐...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임금과 승진에서 차별을 받지 않기에, 무조건 대학가자는 고비용 저효율 현상도 없다. 우리나라도 국민인식도 바꿔나가고 학력차별금지법 제정 등 법적,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차가운 경쟁에서 따뜻한 협력으로 바꿔야 한다.

 

 

정리 정미숙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강서구 양천로 400-12, 1225호 (가양동, 골드퍼스트)
  • 대표전화 : 02-2272-9114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남규
  • 법인명 : 시사매거진2580
  • 제호 : 시사매거진2580
  • 등록번호/등록일 : 서울 다 06981 / 2004-06-02
  • 등록번호/등록일 : 서울 아 03648 / 2015-03-25
  • 발행일 : 2004-06-02
  • 총재 : 이현구
  • 회장 : 김태식
  • 발행인 : 김남규
  • 편집인 : 송재호
  • 시사매거진2580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시사매거진2580.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smgz2580@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