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공예의 장인, 석수쟁이 ‘서복수 선생’
석공예의 장인, 석수쟁이 ‘서복수 선생’
  • 시사매거진 2580 dhns@naver.com
  • 승인 2013.09.2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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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 첫 개인전 “석공예의 예술성이 알려졌으면..”

갤러리 평창동에서는 7월, 석수쟁이 ‘서복수’ 선생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이번 개인전은 그의 40여년간 오로지 석공예만을 천직으로 알고 살았던 오랜 세월의 작품활동이 한 자리에서 전시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깊었다. 더욱이 석공예는 인류 문명과 맥을 같이하며, 예술작품으로 다루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의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목재나 도자기의 재료로 사용되는 흙과 달리, 석공예는 미적인 작품성을 가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석수쟁이 ‘서복수’ 선생 모습ⓒKoreaNews

한국 전통의 석조문화, 40여년 작품활동에 매진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가장 많이 사용한 재료는 아마도 돌일 것이다. 초기에 돌도끼나 창 등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냥 했으며, 선사시대에는 고인돌, 선돌, 열석 등 무덤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문명이 발달하면서 미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예술적 가치의 건축, 조각, 장식 등에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서양에서는 대리석을 많이 사용한 반면 동양에서는 화강암을 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문화와 함께 불국사 다보탑, 불국사 삼층석탑, 석굴암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예술품들이 돌로 만들어졌다. 이밖에도 생활용품으로 문방구류인 벼루, 필통, 문진등과 흡연구류인 담배함, 재떨이 등이 만들어졌으며, 식기류, 향로 등 다양한 용도로 석공예가 발전되어 왔다.

서복수 선생은 “목재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라지거나 불에 타기 쉬운 재료로 화실의 위험성도 있지만, 돌은 오랜기간 원형이 보존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인 미륵사지석탑의 경우, 백제 말기 무왕 때인 600~640년에 건립된 것으로, 무려 1400년을 견딜 만큼 오래되었다”고 설명했다. 조상들이 이룩한 석공예들이 혼과 열정이 들어있듯이 자신도 그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석공예 작품활동에 40여년을 매진하여 왔다는 설명이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들도 관람객들이 석공예의 아름다운과 참 멋을 느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의 나이 10대 중반, 아무 연유도 모르고 따라나섰던 석수쟁이의 길, 그로부터 40년 세월동안 그의 앞에는 늘 돌이 놓여 있었다. 작품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쳐간 돌들은 예술작품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서복수 선생을 천생 석수쟁이 장인’이라 부르기 시작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단순히 돌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장인정신에 입각한 예술품으로서 돌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서복수 선쟁은 대전지역 명장, 장인들의 모임에 함께 하며, 여러 숙련인들과 더불어 대전지역 우수인재 발굴에도 저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수 숙련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장인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KoreaNews

‘후학양성의 어려움..정부의 정책적 지원 필요’

문화재수리기능자란 문화재수리기술자의 지도·감독을 받아 문화재수리에 관한 기능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자로서, 문화재수리기능자 자격증을 발급받은 자를 말한다. 문화재 수리에 대한 현장실무능력을 갖춘 전문기능 인력을 배출하여 문화재 수리현장을 효율적·체계적으로 관리함으로써 부실시공을 방지하고 철저한 문화재 원형보존을 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격제도이다. 최근 남대문 화재로 인해 소중한 문화자산이 소실되었을 때 이들이 없었다면 남대문의 원형복원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석공예 문화재수리기능 보유자이자 국가기술 석공예기술자인 서복수 선생. 그는 문화산업 시대에 부응하는 석조문화가 계승, 발전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피력했다.

 

ⓒKoreaNews

 “그동안 중국 등지에서 무분별하게 수입되어온 석조제품들은 우리의 전통 석조문화의 중심을 잃는 것으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수치라 생각했다”며, 그래서 우리 스스로 석조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하면 후손을 볼 면목이 없다고 강조한다. 석공예 작품 한 점, 한 점을 제작할 때마다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현재 우리나라 석공예 현실은 암울하다. 삼디 업종으로 구분되어 석공예를 배우려는 기능공이 거의 없는 현실로, 50대 이상 석공예가 100여명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한국 석조문화를 발전시킬 후임자가 점점 없어진다는 현실이 암울하다는 것이다.

석공예는 돌에 우리의 전통 숨결을 새기는 작업이라 강조하는 서복수 선생. 그는 “어려울 때 석재기술을 배워 돌을 깨면서 인생을 배웠다. 돌 깨기 40여년, 외길 인생만큼 수만 번의 정질로 생명이 깃든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보람을 느꼈다”고 회고한다. 돌만큼 정직한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우리나라 석공예 산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토산품으로서 원자재 조달이 용이한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왔다. 하지만 석공예제품을 만드는 업체가 대부분 영세하여 서복수 선생처럼, 장인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외길 인생으로 정을 들때마다 전통을 생각했던 그의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작품들이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한국 돌의 매력은 화강암이 주류를 이루지만, 대체로 작업하기에 좋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하는 서 장인은 “석공예는 단순 기능이 아니라 예술적인 작업으로, 정부에서도 기능인 육성에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한다. 거칠고 투박한 돌을 다듬어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다면, 세계적인 석재문화와 견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기에 보다 좋은 환경조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다. 또한 기계가 도입되면서, 전통 석조물 제작기법이 사라지고 있다며 이를 보존, 전승하기 위한 장인정신을 거듭 강조했다.

 

<서복수 선생 이력사항>

 1957년 전남화순 태생

1994년 한식문화재 기능사

2000년 대전기능경기대회 은상.석공예기능사

2001년 대전기능대회 금상 2004년 대전기능대회 금상

2010년 대전기능대회 은상.전국기능대회 동상

2012년 사)한국석조각 예술인연합 대전세종지회 창립전

문화재 기능인협회전 입선.제19회 한국미술 국제대전 특선

대전 기능대회 심사위원회

2013년 제2회 한국석조각 예술인협회 세종지회전

제20회 한국미술 국제대전 안산시 시장상

현재 사)한국문화재 기능인협회 정회원

문화재 기능인협회 대전충남지회 이사

박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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