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실리’보다 ‘신뢰’를 선택해야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실리’보다 ‘신뢰’를 선택해야
  • 시사매거진 2580 dhns@naver.com
  • 승인 2013.11.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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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공약 ‘기초선거 공천폐지’에 대한 새누리당의 조속한 입장표명 촉구

지방선거가 불과 8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보자에 대한 정당공천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고3 수험생이 본격적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해야 하나 아직 입시제도가 확정되지 않은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위의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지난 대선 당시 여야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었다. 따라서 정치인 개개인의 신념이나 여야의 정치적 이해득실을 떠나 ‘정치권의 약속 이행’차원에서 폐지하는 쪽으로 큰 방향을 잡고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선에서 하루속히 매듭을 지어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 7월, ‘기초자치선거 정당공천제 찬반검토위’를 구성하여 전당원 투표를 통해 정당공천제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아직까지 미동도 없다. 지방선거를 준비하고 있는 후보자들의 속 타는 마음을 외면한 채 묵묵부답이다. 새누리당의 조속한 결단과 대국민 약속 이행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실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해 우려스러운 시각이 없지 않다. 정당의 책임정치 구현이라는 차원에서 정당공천제는 필요하다는 것이 평소의 생각이다. 책임 정치의 핵심은 정당이 일종의 여과 장치를 통해 후보를 공천하기에 앞서 후보자의 도덕성, 정치인이 지녀야 할 자질, 능력 등을 심사하는 것이다. 그 후에 후보를 선출하고 선거를 치러야 한다. 이는 일종의 연대보증을 서는 격이다. 유권자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기 위해 좋은 인재를 발굴ㆍ육성하고, 지방자치를 담당하는 지역 정치권에 좋은 인적 자원을 공급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야말로 정당의 핵심적인 역할이다. 그 소임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또한 정당공천제는 정치 참여의 훈련 기회가 적은 여성과 장애인 등의 소수자에게는 꼭 필요한 제도이다. 실제로 2002년 3.2%에 불과했던 여성 당선자의 비율은 정당공천제가 도입된 이후 큰 폭으로 증가하여 2010년 선거에서는 16.7%에 이르렀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만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각계각층의 민의와 요구를 골고루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이러한 일들은 축소되거나 사라질 위험이 크다.

물론,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견에도 일리가 있고 경청할 점이 있다. 지방정치의 중앙정치 예속화, 정당공천을 위한 줄서기와 공천 과정의 잡음, 지역구도 및 양당 구도에 따른 유권자들의 이른바 ‘일렬투표’나 ‘묻지마 투표’등이 정당공천에 따른 주요 문제점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으로서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문제들은 정당공천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였을 때 예상되는 부작용이 더 크고 심각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책임정치 차원에서 정당공천제를 유지하며 그 장점과 순기능을 살려 나가는 한편 나타나는 문제점들은 개선, 보완해가자는 것이 기본적인 내 입장이고 다수 동료 의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공천제의 폐지에 동의하는 이유는 우선 이것이 정치권의 대국민 약속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에 대한 약속은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아울러,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여전히 높은 이상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을 사정 또한 없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될 경우, 과거 정당공천제가 시행되지 않았던 시절 경험했던, 부적격 후보자를 포함한 후보자의 무분별한 난립, 재력에 기반을 둔 지역 토호 세력의 지방의회 장악, 여성 등 소수자의 정치적 참여 기회 봉쇄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그동안 유권자들의 의식과 수준 또한 이전과 다르게 진일보하였다는 믿음에 기초하여 여야의 논의 과정에서 충분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여부에 대한 정치권의 판단 기준은 ‘실리’보다는 ‘신뢰’가 되어야 할 때다. 제도를 새로 만들거나 바꿀 때 당연히 심사숙고하고 신중해야 하지만 일단 약속한 이상 약속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아직까지 선거룰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지방선거 후보자들을 바라보는 마음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런 일이 없도록 적어도 선거 1년 전에는 룰을 확정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 되었으면 한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한 새누리당의 입장은 무엇인지,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어떤 룰로 치를 것인지에 대한 새누리당의 조속한 입장표명을 촉구한다.

함용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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