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엔텍 김강희 회장, “세계적 기술력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 한다.”

해양 한국을 만들어가는 미래경영의 산 증인

2015-04-08     이지한 기자

[이지한 기자] 한강변의 기적을 일구어낸 한국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건설로 대변되는 중동의 기적은 물론 철강, 반도체, 자동차, IT, 최근 해양기술 및 플랜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러한 산업 경쟁력을 갖추기 까지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엔지니어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부분 중의 하나로 장인정신으로 대변되는 기술개발 노력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하다. 최근 청년 실업난이 가중되고 있지만 대부분 그 현실을 들여다보면 인문학 위주의 치우친 교육현실과 기술 엔지니어로 나아가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적다는 부분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미래를 경영하는 동화엔텍 김강희 회장을 만나보았다.

세계 5대 열교환기 글로벌 메이커 회사

부산시 강서구 화전산업단지에 위치한 동화엔텍은 세계 5대 열교환기 메이커 회사로서 엔진용 및 육상용, 선박용 열교환기와 발전설비를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는 중소기업청 발표 ‘2014년 World class 300 프로젝트’에 선정될 만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이미 열교환기 부분에 있어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1980년 설립 이래 선박용 열교환기와 석유화학 발전설비용 열교환기 제조업을 걸으며 기술력을 확보해온 장인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실제로 1992년 R&D 연구개발센터를 만든 이래 해마다 열교환기의 업그레이드를 달성, 국내는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또한 LNG선박용 제품과 소음기 등의 설계와 제작에도 성공하고 석·박사급 연구원들로 구성된 연구 인력은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고자 준비하는 등 막강한 맨 파워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성장배경에는 김강희 회장의 미래경영이 그 중심에 있다. 그래서 지금도 회장실 문에는 ‘미래를 생각하는 방’이라고 쓰여 있다. 그것은 최근 김 회장이 LNG 선박 등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김 회장은 “배 운항비의 60%는 기름 값인데 원료비를 낮출 수 있는 LNG 쪽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습니다. 이는 LNG 가격이 싸지고 셰일가스가 나오고 있는 데다 환경문제로 선주들의 LNG 선박 발주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대형조선소가 살아야 중소조선소, 조선기자재업체도 덩달아 성장하는데 중국이 너무 바짝 따라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국의 견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친환경적인 고부가가치 선박으로의 방향전환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세계 최고 수준의 열교환기 생산업체로서의 자리를 지켜나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때 세계 1위를 자랑하던 선박 수주가 중국의 저가공세 등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김강희 회장은 세상의 변화가 빠른 상황에서 이에 대처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에너지에 관심을 많다는 김 회장은 “지금 가장 큰 변화는 에너지의 변화로, 에너지원이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어 100년이 왔지만 앞으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기에 이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동화엔텍이 개발 중인 항공기 엔진과 관련해서 “앞으로 얼마나 할진 몰라도 항공기엔진용열교환기 개발 시작을 2007년부터 했으니 한 8년쯤 되었지만 앞으로 갈 길이 더 멀고 아직도 실험단계로 국내에서는 아직은 기초단계라 할 일이 많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꽃이 피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 소개했다. 늘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하고자 하는 김강희 회장의 미래경영. 현재의 동화엔텍이 세계적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과감한 도전, 세계적 기술 개발에 주력

김강희 회장은 해양대학교 출신의 엔지니어이다. 더욱이 당시에는 6.25 전쟁이 막 끝난 시점이라 우여곡절을 많이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김 회장은 요즘은 조금만 힘들어도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라 하더라도 배움의 시간은 소중하며 그것은 꿈을 키우는 과정으로 만들어 가는 것으로 젊은이들이 좀 더 인내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는 게 생각같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전부가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그 진행이 탄탄대로면 문제가 아니지만 사실 과정에는 끝없는 위험요소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라고 말한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로 자신도 그와 같은 과정을 겪어왔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아버지가 훌륭하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때 아버지께서는 잘 되어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말씀을 하지 않고 그저 ‘공대를 가야한다, 기술이 있어야 산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서울대 공대를 가려 했는데 해양대학 입학광고가 나왔는데 거기가 국립이고 학비가 없다며, 전학생이 국비 장학생으로 그곳으로 가는 것이 낫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바로 자신의 오늘이 있기에 아버지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으로, 해양대학교 졸업 후 해운공사에 입사 ,해양 엔지니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공무부장까지 지낸 김 회장은 1974년 선박수리업으로 독립, 1980년 동화엔텍(옛 동화정기)을 설립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바다에서의 일이 좋아서 일을 했지, 회사를 차리고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공도 보장할 수 없는 회사를 굳이 좋은 직장을 버리고 해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으로 누가 하고자 하겠습니까? 하지만 선박수리업의 사장이 없다며 결국 도망갈 수가 없어서 사표를 쓰고 수리회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한 일이지만 한 번 도전했기에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기존 회사들이 있었지만 그들보다 더 기술적으로 자신감이 있었기에 과감한 도전이 이어졌고 결국 2~3년 뒤에는 일감도 많이 들어오고 돈도 벌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김 회장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강조한다. 비록 우리가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기술개발을 통해 이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기에, 해양 엔지니어로서 제2의 장보고도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어려움을 겪는 것은 모두 비슷할지 모르지만 이를 딛고 일어서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동화엔텍 김강희 회장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어떨 때는 자존심이 깎여도 그걸 맘에 두고 그러면 안 됩니다. 절대로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회사 식구도 400명으로 그들하고의 운명도 걸려있습니다.”라는 김 회장의 말에서 최고 경영자로서의 애환도 엿볼 수 있었다. 동화엔텍은 노사 화합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며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특히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에도 인원 감축 없이 이를 이겨내고 노조가 자발적으로 임금 10%를 반납하는 등 화제가 되었던 회사이다. 그래서 김 회장은 당시 회사가 정상화되었을 때 그에 대한 보답으로 발행 주식 16%를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미 글로벌 기업의 면모를 갖추고 있지만 김강희 회장은 더욱 직원교육에 힘쓰고 있다. “장차 회사의 큰 재목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재교육을 통해 기술, 경영관리. 외부강사도 초빙하고 전담하는 과정을 만들었는데 이제 3기가 마무리 되어간다.”고 밝혔다. 늘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 바로 인재육성을 통해 미래경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