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이기에 그 행복을 나눠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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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태홍 기자 smypym@naver.com
  • 승인 2015.02.0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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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농장 김용복 명예회장, 한국에서 제일 높은 태극기 게양식
ⓒ시사매거진 2580

[권태홍 기자] 농장에 태극기 게양식이 있다? 독자들은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실제로 지난 2014년 11월 28일에 전남 강진군 신전면 벌정리에 있는 영동농장 광장에서 태극기 게양행사가 열렸다. 30m높이의 국기게양대에 가로 8.6m, 세로 6m 크기의 대형 태극기는 물론 18m 높이의 국기게양대 8개에 17개의 광역단체기가 함께 걸린 것이다. 한국에서 제일 높은 게양대에 제일 큰 태극기를 건 영동농장 김용복 회장.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가 젊은 세대들에게도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또 김 회장은, 자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 말한다. 지금까지 세 가지의 꿈을 가졌고 그 꿈들을 차례로 이루어냈기 때문이라 말한다.

 

중학교조차 마치지 못한 가난한 소년

“내 인생에 있어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세 개가 있습니다. 이제 그 마지막 3단계를 성취할 때 입니다.” 올해로 82세의 적지 않은 나이의 영동농장 김용복 회장은 세 개의 꿈을 이루었기에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꿈은 100만평에 이르는 자신의 땅을 갖는 것. 두 번째는 한국에서 제일가는 농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세계의 굶주린 가난한 어린이들을 돕는 것으로 영동농장이 바로 그 꿈을 이룬 결과라고 한다. 이제 그 영동농장에서 세 번째의 행복을 위해 재단을 세우고, 장학사업과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세계를 돕는 꿈을 꾸고 있다.

가난한 소작농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3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중학교조차 3학년 때에 중퇴해야 했을 만큼 가난했던 김용복 회장. “1951년 한국전쟁 당시. 부산역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다 한 미군을 만나 월사금을 내지 못해 쫒겨난 중학교에서 배운 서투른 영어로 말한 것이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고 회상한다. 짧은 영어실력에 나온 “아이엠 컨츄리보이. 헝그리. 헬프미”라는 단어 몇 마디가 한 미군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 미군은 그를 부산소재 통신대대에서 구두닦이, 청소, 세탁 등의 일을 하는 하우스보이로 만들어주었고 그곳에서 3년 동안 영어와 운전을 배우게 된다.

미군부대 생활이 그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어려웠던 시기임에도 미군부대에서 배운 영어와 운전 실력으로 취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고, 이후 미군 부대와 미국 빈넬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배우지 못한 열망으로 검정고시와 1960년대 건국대학교 야간학부 정치외교학과까지 나오게 되었다. 미7사단 행정중대 도서관 5급 사무관으로 취직, 육군 중령에 해당하는 12급까지 승진했던 김용복 회장. 이 후에도 주한 메들랜드 주립대학 분교 교무과장까지 지내게 된다.

 

사우디에 농장의 꿈을 이루어내다

하지만 그에겐 더 큰 꿈이 있었다. 김 회장은 “100만평의 땅을 갖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1965년 베트남전쟁으로 350달러를 준다는 말에 파월 노동자에 참여했고 5년간 베트남에서 생활하며 월급의 80%를 아내에게 송금, 당시에 말죽거리 땅 9000평을 사들이기도 했다.”며, 그 땅이 지금으로 치면 시세가 약 8,000억 상당이라 한다.

그러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70년, 설립한 국제수출포장 공업사에서 연탄가스 중독사고가 발생했고 결국 그 땅을 모두 팔아야 했다. 다시 어려워진 생활. 그가 1975년 40세를 넘긴 나이에도 사우디에서 일하는 노무자 생활을 시작한 이유이며, 이곳에서 드디어 원하던 꿈을 이루어 나간다. 자신처럼 노동자로 일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배추와 무를 키워 김치재료를 팔자는 아이디어가 떠 오른 것이다. “당시 15만 명의 근로자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였고, 나는 사우디정부의 80%지원으로 농장을 세우게 되었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사우디 영동농장은 500kg의 배추 수확을 시작으로 3년 만에 개인 신분으로 수출석탑산업훈장까지 받기도 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10년 동안 250만평의 농장으로 확대되고 매출액이 5240만 2600달러, 한국 돈으로 582억 원에 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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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꿈 “세계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이렇게 탄생한 사우디 영동농장이 한국으로 옮겨지며 지난 1982년, 고향 일대의 땅을 9억 원에 사들였고 갯벌이었던 땅을 네덜란드 간척 전문회사에 의뢰해 현대식 농경지로 조성하였다. 현재 도작 단일면적으로 전국에서 가장 넓은 57만㎡ 농지에 유기인증으로 ‘그린음악쌀’을 생산 공급하며 겨울에는 겉보리를 재배해 보리음료 맥콜의 원료를 공급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세 번째 꿈을 이루는 공간이다. 이미 김용복 서울 영동농장 명예회장은, 1982년 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서 야채농사를 하며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2~3명의 장학생을 도왔다. 너무도 가난해서 중학교조차 마치지 못한 아픔이 있기에, 자신 같은 가난한 학생들을 도와주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재)용복장학회로 처음 세명의 장학생으로 출발한 장학사업은 그 범위가 점점 커져 용복 장학생들은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매년 나눔터라는 장학회지를 발간하여 계속적으로 장학회 소식을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김 회장은 탈북청소년에게도 관심을 가져, 교육기관인 학교법인 여명학교에 연간 600만원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다 2003년부터는 100억 원을 출자, 한사랑농촌문화재단을 설립하며 우리 농촌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발굴하여 매년 4월에 시상식과 상금을 수여하는 등 지난해가 10주년으로, 한사랑 러브레터도 발간하고 있다.

김 회장은 2013년도에는 아너소사이어티의 새해 첫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이동건 공동모금회 회장에게 1억 원 기부를 약정하고, 아너소사이어티 229호 회원으로 등록한 것이다. 특히 새로운 복지사업으로 어린이복지재단 설립을 계획하는 김용복 회장. 이를 통해 국내는 물론 세계의 어린이들을 돕는 새로운 꿈을 꾸며 마지막 나눔을 실천하고자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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